단순과거는 문어에서만 쓰이니, 복합과거와 시간적 가치가 같다는 점만 알아두라. 반과거는 진행 중인 과거, 즉 어느 시점의 배경을 설명하고 복합과거는 완료된 과거의 행동을 의미한다, 기타 등등. (...정말 그렇기만 할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한국에서 접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시제들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간 적이 없었다. 그럴듯한 설명을 위해 예문 몇 문장을 더 얹느냐 마느냐 하는 차이만 있었을 뿐, 고등학생 때 사서 뒤적거렸던 프랑스어 초급 책도, 학교에 입학해서 들었던 중고급 수업도, 또 수업으로도 부족해서 참고하기도 했던 여러 인터넷 강의들도 모두 똑같았다. (물론 환경 탓만 하고자 함은 아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읽고 알아내고자 한다기에는 너무나 게으르기도 했다. 그때 이런저런 서적이나 논문을 살펴봤으면 이제 와서 이런 투정 아닌 투정을 하지 않았을 수도.) 지금 다시 유튜브나 알라딘, 구글, 각종 블로그 등등을 뒤적거려도 별반 다른 시각, 정확한 정보는 전무하다.
이렇게 극히 단순화된 (단순하더라도 정확하다면 모르겠는데, 정확하지도 않은 빈약한 단순함인) 개념을 가지고서 프랑스문학 텍스트의 독해에 돌입하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알고 있는 개념만으로는 문장의 시간적 선후구조는 물론(시제적 의미) 텍스트 내부의 시점 파악이나 화자의 태도 등(서법적 의미, 시점의 문제)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지고, 거기서 잘못된 해석과 오역이 발생하며, 결국 자기멋대로 의미를 욱여넣고 끼워 맞추는 주먹구구식의 해석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앞선 간단한 개념만을 가지고서 모든 시제적-서법적 의미의 설명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만, 빈약한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 의미의 파생과 발전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을(파악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을) 정도로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세상에 더는 없지 않나 싶다.
거두절미하고, 문두에 주절거렸던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텍스트 몇 개를 이해해보자. 첫 번째로, 단순과거가 복합과거가 같은 시간적 가치를 지녔다면
ex) D'autres en auraient pu faire un livre ; mais l'histoire que je raconte ici, j'ai mis toute ma force à la vivre et ma vertu s'y est usée. J'écrirai donc très simplement mes souvenirs, et s'ils sont en lambeaux par endroits, je n'aurai recours à aucune invention pour les rapiécer ou les joindre ; l'effort que j'apporterais à leur apprêt génerait le dernier plaisir que j'espère trouver à les dire.
Je n'avais pas douze ans lorsque je perdis mon père. Ma mère, que plus rien ne retenait au Havre, où mon père avait été médecin, décida de venir habiter Paris, estimant que j'y finirais mieux mes études. (앙드레 지드, 『좁은 문』)
(보다시피 파란색 부분은 복합과거이고, 빨간색 부분은 단순과거인데) 똑같은 '문학 텍스트' 내에서 쓰였건만 어째서 복합과거와 단순과거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가? 둘의 가치는 정말 같을까? (이는 쉬운 편에 속한다. 독해만 해봐도 둘의 쓰임이 어떻게 다른지 어찌저찌 알아맞출 수는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ex) J'ai embrassé l'aube d'été.
(...) J'ai marché, réveillant les haleines vives et tièdes, et les pierreries regardèrent, et les ailes se levèrent sans bruit.
La première entreprise fut, dans le sentier déjà empli de frais et blêmes éclats, une fleur qui me dit son nom.
Je ris au wasserfall blond (...) (아르튀르 랭보, 「새벽」)
랭보의 「새벽」이라는 아름다운 시인데, 이 시는 내가 뭉뚱그려 이해해왔던 시제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여기서도 앞선 예와 마찬가지로 복합과거와 단순과거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그 차이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 나아가 복합과거를 쓰던 Je에서 마지막에 단순과거를 쓰는 Je로의 이행은 시 내부의 서사에 있어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참고로 해당 문제를 의식하고 읽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지점을 한국어로 번역하고자 할 때 대관절 어떻게 해야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더욱 두렵고 재미있어진다.)
두 번째로, 반과거가 어느 과거 시점의 '배경' 혹은 '지속'을 뜻하는 것이라면,
"Vous avez de la chance de me rencontrer : je sortais."
"Un quart d'heure après j'étais chez Prudence. Elle rentrait à peine."
"L'idiot que je suis ! L'année dernière j'achetais un appareil photo dont je n'avais nul besoin, et cette année je n'ai même pas de quoi me payer le cinéma."
"Il avait mal aux dents, mon petit."
이 문장들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반과거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옮겨야 좋을까? 배경이고 지속이니까, 각각 '나가는 중이었어요', '돌아오는 중이었다' '사고 있었다' '이빨이 아팠구나' ? 전부 다 틀린 해석이고 오역이다. 이를 단숨에 어떤 의미로 파악해야 좋은지 파악해 낸 혹자가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면 좋겠다. 나였다면 몇 년 전까지, 그리고 이전까지 배워왔던 얄팍한 문법지식으로는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를 어떻게든 새롭게 해 보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물쩡 넘어가기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법이니까.
사실 방금 언급한 문제들은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한다. 기존의 간단한 설명으로도 모든 문장이 이해가 되는구만 왜 호들갑을 떠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앞뒤 맥락을 요리조리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한국어로 옮기려 애를 써보면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몇 번은 맞듯 어찌저찌 정확히 해석을 해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애초부터 '정확하게 공부하고', '정확하게 의식하여',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서 이야기한 랭보의 작품으로 시제 감각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읽어보게 된 책이 바로 이모토 히데타케井元秀剛의『中級フランス語:時制の謎を解く(중급프랑스어 : 시제의 비밀을 풀다)』(白水社、2017)이다.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이제 와서 '중급' 책을 읽었다 고백하다니, 뭐 하자는 거냐, 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중급 프랑스어'랍시고 대과거나 전미래 같은 것들을 어쭙잖고 무책임하게 가르치는 그런 류의 책이 아니다.

본 책은 질 포코니에Gilles Fauconnier의 정신공간(Mental space) 이론을 통해서 프랑스어 시제의 비밀을 풀어나간다. 즉 프랑스어의 시제를 BASE(발화 장소), V-POINT(시점의 장소), EVENT(동사가 벌어지는 사태의 장소), FOCUS(이야기하고자 하는 장소)라는 네 가지 장소 요소를 통해 시제의 '도식'을 그려내고 또 분석하며 각각이 어떤 시제적-서법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지를 인지시켜주는 책이다. 단순히 대과거는 '어느 한 과거 시점보다 더 앞서서 완료된 과거'라고 퉁치고 암기하라, 가 아니라, 주체의 시각을 어디에 두고서, 사건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시점에 놓이게 되는지를 도식으로 하나하나 그려주면서 훨씬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해 준다. 다음은 이러한 도식들을 바탕으로 하여 본 책에서 다루는 문제의식들이다.
- Si 가정문의 종속절에는 '반과거'를 사용하는데 (Si + 반과거, 조건법) 그냥 그런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어째서 '반과거'를 사용하는 것일까?
- 과거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 혹은 역사를 설명하는 정보문에서 간혹 단순과거가 아니라 '현재형'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현재형을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일까?
- 과거 어느 시점보다 더 앞선 과거를 뜻하는 시제인 '대과거'와 '전과거'는 (후자가 문어에서 쓰인다는 것을 제외하고서) 가치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또 '전과거'가 자주 사용되는 맥락의 특징은 무엇일까?
- 'Quand j'ai eu dansé', 여기서 쓰인 시제는 '복복합과거(혹은 중복합과거?)passé surcomposé'라고 하는데, 대체 어떤 효과를 위해서 쓰인 것일까? '복대과거plus-que-parfait surcomposé'(ex, j'avais eu aimé), '복합 전미래futur antérieur surcomposé'(ex, j'aurai eu chanté)도 마찬가지.
- 상대를 비난할 때 쓰이는 대과거(ex, Je t'avais dit faire attention)는 굳이 복합과거로 써도 무방할 듯한데 왜 대과거가 더 적합한 것일까?
- 근접미래(무엇보다 일단, 우리가 근접미래라 알고 있는 aller+inf 형태는 엄밀히 말해서 시제가 아니라, 시간적 상을 더해주는 반조동사의 용법이며)를 quand 종속절에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ex, Je te prie de me prévenir quand tu verras l'eau bouillir -> 여기서 verras를 vas voir로 바꿀 수 없다)
- 훨씬 더 가까운 미래니 확실하게 예정된 미래니 하는 설명은 집어치우고, '근접미래(더불어 가까운 미래를 나타내는 현재형)'와 단순미래는 각각 근본적으로 어떤 상태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일까?
- La guerre (durer) cent ans. 여기 괄호 안의 동사를 복합과거로 쓰는 것이 맞을까, 반과거로 쓰는 것이 맞을까? (그 이유는? 그리고 여기서는 불가능한 시제가 허용되는 예외적 경우는?)
- 프랑스어 학자 Jacques Bres가 '굉장히 아름다운 키스신'이라 평한 보리스 비앙의 문장, "-Je... dit-il tout contre son oreille, et, à ce moment, comme par erreur, elle tourna la tête et Colin lui embrassait les lèvres. Ça ne dura pas très longtemps." 이것이 어째서 그렇게 아름답게 비추어지는지, '시제'와 '시점'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이해가 가능한가?
- 반과거의 서법적 용법인 '어조완화의 반과거', '시장의 반과거', '애정표현의 반과거', '설명/절단의 반과거', '유희의 반과거(조건법 현재도 가능)', '간발의 차 반과거' 등을 원문으로 인지할 수 있는가?
- 조건법 문장인 "La semaine prochaine nous irions à Cerisy-la salle participer à un colloque sur L'Etranger. Si Camus avait été avec nous, cela aurait enrichi le débat."를 보면,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에 대한 가정이건만, 어째서 종속절에 대과거를, 주절에 조건법 과거를 쓰고 있는 것일까?
- C'est délieiceux !
- Vous permettez ? (Il goûte.) Vous avez raison, mais la mayonnaise pourrait être meilleure !
"Il me proposa de lui vendre le brevet. Et j'aurais accepté !"
여기서 마지막 밑줄 친 시제들은 각각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칭찬? 불평? 돌려 까기? 가정? 동의? 부정?
이외에도 여러 문제의식과 친절한 설명으로 가득한데, 가장 눈에 띄는 것들만 몇 가지 적어보았다.
사실 이러한 세세한 문법사항에 관한 것은 일본에서 불문학을 전공/연구하는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 白水社의 <프랑스어 핸드북>(『フランス語ハンドブック』; 이름은 핸드북이지만 문법과 독해를 총정리해 놓은 꽤나 무거운 책이다)이나 그 유명한, 그리고 괴물 같은 아사쿠라 스에오朝倉季雄의 <프랑스문법집성>(『フランス文法集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마어마한 프랑스어 문법의 집대성)만 펼쳐보더라도 일목요연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본 <중급프랑스어 : 시제의 비밀을 풀다>의 덕목은 문법을 단순히 문법 '사항'으로만 귀납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부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그러한 결과가 되었는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온다. (눈 감고도 풀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수식이 사실은 복잡다단한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더불어 앞의 두 책은 내용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용량 자체가 사전급의 책이라 사실상 전공자나 연구자가 아니면 펼쳐볼 일이 없는 반면에, 본 책은 단순히 취미로라도 프랑스어를 공부하다가, 프랑스 책을 읽다가 이건 어째서 이렇게 해석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 때 가볍게 펼쳐볼 수 있는, 대중을 위한 (그러나 모두를 위한) '교양서'라는 점에서 (또 단순히 교양의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실 반과거가 어쨌느니 단순과거가 어쨌느니 하는 연구나 논문이야 일본이 아니더라도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도 지겹도록 논의가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어떠한 학습 환경의 경쟁력을 따진다면, 그 차이는 결국 그러한 논의들을 모든 대중들이, 취미로 하는 이들이, 그리고 또 다른 학습자들 역시 부담 없이 펼쳐볼 수 있도록 하는 형태로 공개가 되어 있느냐 마느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교양서가 나왔느니 하는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서, 앞서 이야기한 <프랑스문법집성>과 같이 이것이 이 나라에서의 문법의 정확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내놓을 수 있는 어떤 문법서 정도는 있어야 비로소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어문학을 공부할 만한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문법 총정리', '~급프랑스어 문법' 같은 이름의 문법서만 단편적으로 찍어내고 있거니와 그 내용조차도 기존의 했던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무언가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망라해 주는 절대적 기준이 없으니 유튜브나 블로그 등등 도처에서 빈약한 정보만이 대중을 향해 유입되고, 또 그러한 환경을 바탕 삼기에 비로소 양질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학습 환경과 번역 풍토 역시 등장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또 문법-독해 중심 외국어 공부가 문제다, 그냥 외국어는 본토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는 억까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사서삼경 줄줄 읊듯 문법서를 읊는다고 외국어로 일필휘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청산유수로 말을 내뱉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공부하기 싫다는 게으름'에서 나왔을 그러한 푸념이, 문법 표준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지는 못한다. 잘 잡힌 설계도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건축을 시작하는가? 그럴듯한 발음, 그럴 듯한 구어 속어 표현을 남발하며 껍데기만 흉내 내고, 정작 글 하나 정확하게 독해 못하는 까막눈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아니 애초에 문법 중심 교육이니 뭐니 혀를 차기에 앞서서, 애초에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이렇다 할 '표준 문법' 자체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프랑스어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텐데, 결국 어떤 자격을 따서 스스로가 어떠하다 증명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발음을 얼마나 잘 따라 하고 얼마나 본토 '흉내'를 잘 내는지만이 외국어 실력의 척도가 되는 황량한 배경이기에 초래된 기형적인 환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프랑스어를 좀 한다면 달프 정도는 무리 없이 따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쨌거나,) 한국에도 뭔가 답답함과 막막함을 해소해 줄 문법서, 문법 교양서가 많이 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야기가 새어버렸다. 참고로 본 <중급프랑스어 : 시제의 비밀을 풀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일본에서 'I모드와 D모드'라는 이름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어와 서양어의 '시점'에 관한 차이에 관해서도 살짝 다루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서양어라고 해서 다 같은 시점-모드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언급하는 것을 깜빡했는데, 시제에 있어서도 영어와 프랑스어는 완전히 결이 다른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우선적으로 공부했던 우리들은 프랑스어 시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예시들이 본 책에서는 시종일관 함께 제시된다.) 영어와 프랑스어도 차이가 있건만, 거기에 일본어까지 더해 세 언어가 서로 어떻게 의미를 받아들이고 번역에 차이를 보이는지 제시한 흥미로운 예가 있어 함께 첨부한다. 문장의 예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이다. 한국어 번역은 내가 임의로 함께 첨부했다(민음사의 유숙자 역). 한국어와 일본어는 크게 구조가 다르지 않아, 번역됨에 있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 유의.
일본어 :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そこが白くなった。
(한국어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영어 :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The earth lay white under the night sky.
불어 : Au sortir du long tunnel de la frontière, on se trouvait au pays de neige. Le fond de la nuit avait blanchi.
(한국어로도 알 수 있듯) '내부시점-I모드-주제중심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어의 경우는 저절로 열차의 '내부'에서 바깥을 보는 풍경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외부시점-D모드-주어중심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영어의 경우(주어 중심 언어)는 주어부를 필연적으로 명확히 제시할 수밖에 없기에, '열차train'라고 하는 일본어에서 숨겨졌던 주어가 표면에 명시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차의 바깥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 관해서 영역본 번역자가 후기인지 서문인지에 이 불가피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밝혀두었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에, 프랑스어는 영어와 달리 자신과 가까운 시점 혹은 배경이나 일자(一者)를 나타낼 수 있는 on이라는 특별한 중성대명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어 특유의 내부적 시점을 완전히 잃지 않고 옮겨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영어까지 곁들어서 일본어와 프랑스어의 차이점 및 유사점을 함께 좁혀나가는 시도가 굉장히 흥미롭게 여겨지지만, 그 와중에 또 부러웠던 것은 이렇게 자국의 문학작품을 가지고서 해외의 번역 예시들을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레거시였다. 책에는 설국의 예시 말고도 겐지모노가타리 등의 예시도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러한 다언어 번역을 함께 비교하고서 그것을 교양서라는 형태로 함께 낼 수 있는 그 단단한 바탕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중급프랑스어' 시리즈가 '시제' 뿐 아니라, '서법' 그리고 '관사'까지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시리즈는 물론, 아사쿠라까지 앞으로 꾸준히 읽고 나의 감각으로 길러나갈 초석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방금 이야기한 'I모드'와 'D모드'에 관해서 다룬 프랑스어 문법 관련 책은 한국에도 있으니 참고. 시간 날 때 나도 한번 읽어볼 요량이다. 시간이 되면 리뷰할 것. ; 박만규, <프랑스어식 사고법>, 씨엘, 2023.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후쿠다 츠네아리, 『인간, 이 극적인 존재』 (福田恒存、『人間・この劇的なるもの』、新潮文庫、昭和35年) (1) | 2026.03.05 |
|---|---|
| (서문, 1장) 롤랑 드 르네빌, 『시적 체험 혹은 언어의 은밀한 불길』 (0) | 2025.02.11 |
| 『물질과 기억』 머리말~1장 (0) | 2024.11.11 |
|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연구5, 신비와 관능) (0) | 2024.10.16 |
|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11장~13장) (0)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