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로제 질베르-르콩트

[번역] 미셸 랑돔, 「로제 질베르-르콩트 : 과장의 극치」

eternephemere 2026. 1. 9. 02:46

Michel Random, Le Grand jeu essai, Éditions Denoël, 1970, 91-95p.

번역 : 박지우(eternephemere)

 

Michel Random,  Le Grand jeu essai , Éditions Denoël, 1970, 91-95p.

3. 로제 질베르-르콩트 : 과장의 극치

(3. ROGER GILBERT-LECOMTE. LE SOMMET DE L'HYPERBOLE)

 

마치 수정을 깎듯 고되면서도 굳세게 운명을 쌓아나가는 르네 도말에 비해, 로제 질베르-르콩트의 운명이란 그와는 정반대로, 갈수록 심오하며 어둡고 불길한 길을 파내려 간다. 르콩트를 사로잡는 것은 의식이나 인식이 아니며, 그에게 살아간다는 것이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일이며,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서 세계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에 맞서 반항하는 일이다. 그의 운명이 기도(企圖)하는 바는 좀처럼 이해가 쉽지 않다. 그는 자기 존재의 전적인 변화인 것처럼, 자기 내부에 퇴화를 향한 변화를 거행한다. 마치 각 세포들이 하나둘씩 점차로 사라지다가는 끝내 존재하지 않게 되기를,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이. 인생, 그리고 삶의 본질마저도 거부하는 그의 방식이 너무나도 아득하고 심오한 탓에, 그러한 힘이 한 존재를 기어코 어떻게 몰고 가며 규정하게 되는지 정신은 좀체 가늠하지 못한다. 그는 이를 통해 스스로 '유일한 살인un unique assassinat'이라 이름 붙인, 다시 말해 알려진 모든 형태의 자살을 넘어서서 죽음에까지 도전장을 내미는 냉철한 기획을 증명해 보이게 된다.

이렇게 천천히 이루어지는 자기 질식의 근원적 이유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 술회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재차 다루지 않기로 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르콩트를 오로지 마약이라는 필연에 의한 희생자로 상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일인지 강조한 바 있다.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그의 내면은 '실재보다도 부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가 속한 세계란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세계, 즉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를 매개하는 중간 지대의 세계로, 그곳에는 신의 영상도 없고, 죽음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초감각적 체험을 실현하고 거기서 감각의 심리학을 끌어내는 데에 있지 않다. 르콩트는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그는 초감각적 우주, 죽음-삶mort-vie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진입하고자 하며, 그리하여 그 세계를 전복시키고서 그것을 현생 속에 즉각적으로 수립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궁극적인 목적이 항상 인식되는 것은 아닐지언정, 결국은 유일한 운명fatum, 즉 그를 끌고 가는 유일한 마약으로서 남게 된다.

*Essais sur la vie de Roger Gilbert-Lecomte à paraître aux Editions Gallimard.

1932년, <르 그랑 쥬Le Grand Jeu>가 끝을 맞이한 이후, 그는 인생의 침체기에 돌입한다. 그는 파편적으로만 존재를 이어나간다. 생명력은 시들어가고, 산다는 것이 매일 꾸는 악몽이 되어가지만, 이와는 반대로 사유만큼은 전반적 쇠약에 휩쓸리는 일 없이 간헐적이나 멋들어지게 군림하니, 그러한 사고의 지배 하에서 휘갈기는 '흐리멍덩한 정신의 악필gribouillage moralo-vasouillard*'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무수한 비참을 이야기한다.

*Lettre de Lecomte à Jean Puyaubert.

채 스물 넷 밖에 되지 않은 나이의 르콩트가 말하는 모습은, 마치 수많은 삶의 감각으로 기력이 다 소진된 인간을 연상케 한다. 이제부터 그의 생활상이 어떠한지는 그가 거주하게 되는 여러 방들, 이 호텔 방에서 저 호텔 방으로 전전하며 갈수록 더 비참해지다가 말년에 다다르게 되는 누추한 집으로 요약된다.

1933년 가을에는 르콩트의 모친이 병으로 사망한다. 르콩트는 얼마간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그로부터 한동안, 그의 생애에 유일한 휴식기가 찾아오게 되니, 자코브Jacob가에 있는 생-이브 호텔에 방세를 치르고, 마약을 얻으며 생을 보전할 충분한 밑천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는 막스Maxe라는 이름의 기이한 여인까지 부양하게 되는데, 그녀로 인해 그 몇 안 되는 쌈짓돈을 귀신처럼 탕진하게 된다.

1934년 초에는 도말과 르콩트의 완전한 결별이 이루어진다. 르콩트는 결렬에 대해 가능한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할 터이나, 그에게 엄청난 상심으로 다가온다. 1936년 경, 르콩트는 파리 14구의 프리앙Friand가(街) 5번지에 위치한 두 칸짜리 방에 딱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에게 일찌기 없던 헌신을 하게 될, 뤼트Ruth*라는 이름의 유대계 독일인 여성이 곁을 지킨다. 직업 재봉사인 뤼트는 돈 몇 푼을 벌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필요한 만큼의 마약을 조달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둘 모두에게도 불행한 상황이지만, 이 와중에도 뤼트가 더 가혹한 짐을 짊어졌을 것이다. 르콩트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하나, 그의 부친은 나름의 이유를 들어 그들의 결혼을 금지한다. 그 결과, 1940년에 이루어진 '대규모 검거Grande Rafle' 때에 뤼트는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당하게 된다. 이후 석방되었다가 1942년에 다시 체포되어 그녀는 독일군에 넘겨져 아우슈비츠에 강제로 수용을 당하고, 거기서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Ruth Kronenberg, juive allemande de Rhénanie. (뤼트 크로넨버그, 라인란트Rheinland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

르콩트 본인도 마약 공급책과 함께 처음으로 체포되고(1937년), 1939년에 재차 체포당하게 된다. 같은 해 2월에 그는 프리앙가를 떠나 카네트Canettes가 4번지로, 그다음은 바르디네Bardinet가 16번지에 위치한 허름한 쪽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주 드나들던 선술집에서 금단증상으로 인해 시체처럼 쓰러진다. 그 처지를 가련히 여긴 마음씨 좋은 여주인 피르마Firmat부인은 르콩트를 돌봐주기 시작하고, 부인 덕에 르콩트는 매일매일 끼니를 해결하게 된다. 동네 노동자들도 르콩트의 기묘한 개성과 입담에 매료되어, 그가 약사들에게서 로더넘(laudanum, 알콜과 아편을 섞은 약품)을 얻을 수 있게 돕기까지 한다.

1943년 12월 23일, 오래전부터 미리 예감해왔듯이 르콩트는 파상풍 경직에 다다랐음을 자각한다.

그는 이렇게 당부한다. "아무쪼록, 나를 병원에는 보내지는 말았으면. 개새끼마냥 죽도록 내버려질 테니."

그럼에도 그의 마지막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미리 통보를 받고서 그를 병원으로 옮긴다. 고통이 극에 달해 있는 와중에, 잔혹하게도 마약을 차단당한 르콩트는 고통의 환각에 빠진 채로 방치되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1943년 12월 31일, 브루쎄 병원에서의 일이다. 그의 병실은 잠겨져 있다. 의사들이 병동을 회진하는 시간에서야 그의 시체가 발견된다.

혼수상태에 빠지던 바로 그날, 르콩트는 숙모로부터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인 약 50만 프랑을 상속받던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써두었다. "나는 비극을 믿어 ー 그리고 점근선에 다다르고자 ー 그래, 다다르려고 ー 애쓰지만 끝내 다다르지 못하는 과장 속의 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