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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이 되지 못한 발견의 초라함 : <초라한 감각>, <명상실 창문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eternephemere 2025. 8. 18. 14:29

초라한 감각

_ 여한솔

 

식물원이나 숲엔 유령이 많을 것이다.

 

유령을 유리병에 모아 흔들면 예쁜 소리가 난다.

 

종소리나 모닥불을 만지는 것처럼.

 

유령 하나가 버섯 사이에 누워 낮잠 자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것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하지만 유령을 볼 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것 참 슬프군.

 

정수리 위로 참나무 그늘

 

주말 아침이

 

너무 차가웠다.

 


명상실 창문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_ "

 

저것은 새. 저것은 빛. 저것은 물. 저것은 희망. 저것은 엽서. 저것은 일렁임. 저것은 영혼.

 

창문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아주 커다란 구름이다.

 


 

한 사람의 사소한 발견(發見)이, 일개인의 기쁨과 만족을 넘어 세상을 밝힐 발명(發明)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 발견하는 이의 뒷모습을 외롭지 않게 지켜보아 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리고 발견하는 그의 모습을 곁에서 또 한 번 발견해주는 바로 그 결속의 순간일 것이다. 달리 말해, 잔혹하게도 다른 사람의 지지가 없다면, 돌보아주는 이목이 없다면 발견은 일기에나 남을 법한 초라한 해프닝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

이곳의 '식물원'과 '숲'은 그런 초라한 해프닝으로 가득했고, 지금도 역시 가득하다. 가령, 일반적 사실이라도 되는 양 화자는 '종소리나 모닥불을 만지는' 일을 자신이 겪은 감각의 예시로 든다. 청각(종소리)과 시각(모닥불)이 촉각(만지는 일)이라는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는 이 장소는 보들레르 말마따나 향과 색과 음이 화음을 이루는 감각과 상징의 신전처럼 보인다. 유령도 마찬가지다. '유령을 유리병에 모아 흔들면 예쁜 소리가 난다'고, 마치 몇 번이나 실험해보고 관찰해본 것처럼 화자는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확언한다. 그런데 앞선 1연에서는 어째서 '식물원이나 숲엔 유령이 많을 것이다'라며, 유령의 존재를 다소 주저하듯이 확언이 아닌 가정형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숲엔, 그리고 여기 화자의 곁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다른 사람이 전혀 부재한다. 타인의 부재와 고독은 시 속 이미지 뿐만 아니라 1연부터 7연에 이르기까지 주고받는 대화 없이 홀로된 독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형식적으로 부각된다. 아무도 없기에, 그럼에도 자신의 발견이 자명하고 명백한 발명일 수 있음을 호소하기 위해 '인터넷'에 유령의 사진을 찍어 올려 보기도 하지만 글쎄, 아무런 반응도 지지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은, 이렇게 초라한 고독 속에서 내뱉는 '그것 참 슬프군'이라는 담담한 한탄이다. 과한 슬픔도, 우울도, 연민도 없는, 늘상 겪어 본 일이라 사실 그렇게 별 일 아니라는 식의 자조 섞인 혼잣말. 홀로 이루어낸 발견, 그러나 홀로이기에 결국 발견을 가능케 한 자신의 감각 역시 극히 초라한 것임을 너무나 깨달아버린 자의 어느 해탈에 가까운 독백. 

따라서 화자가 '종소리나 모닥불을 만지'고, '유령'을 발견한 뒤 '유리병에 모아 흔든'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수 없이 많은 현상들을 관찰하고 겪고, 또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감각의 숲에 홀로 들어온 이상, 이러한 감각을 지지해 줄 이가 세상에 영영 부재하는 이상, 발견 또한 쓸모 있는 발명으로 진화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홀로인 자는 '참나무 그늘' 아래, 정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존재인 투명한 유령으로 쓸쓸하게 '차가워'져 간다. 자신이 알아낸 소리가 그냥 소리도 아닌 '예쁜 소리'임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한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로. 

이제 그 어떤 예쁜 것('유령' 부터 시작하여, '새', '빛', '물', '희망', '엽서', '일렁임', '영혼' 등등)을 발견하더라도, 어린애처럼 들뜨는 일 없이 그저 '구름', '커다란 구름'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밖에 없겠지. 그것이 홀로된 자의 결말, 홀로 내버려 두는 세상의 결론이니까. 초라하게도.

 

여한솔, «나의 인터넷 친구»(2025),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