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kyu Lee, Parfum(이준규, 「향기」) 불역 ; '왔다'의 시간감에 관하여]
좋아하는 시를 불어로 옮겨보았다. 이건 무슨 뜻이니 저건 무슨 뜻이니 해설을 늘어놓거나, 번역이 어려웠다느니 공부가 되었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후기를 남길 생각은 딱히 없다. 물론 실력이 못 미덥다 보니 프랑스어 번역문에 있어서 문법적인 오류나 통상적 화법에 들어맞지 않는 어색함이 내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전하고 싶은 소회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어를 옮기면서 더더욱 분명하게 와닿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이 가능했다면, 사소한 문법적 오류 정도야 뭐 어떠냐는 생각이다.
시인이 의도한 바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오다'라는 동사는 '비'에 붙여서 '비가 오다'로 활용해도, '눈'에 붙여 '눈이 오다'로 활용해도 한국어로서는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프랑스어의 경우, '비가 오다pleuvoir' 동사와 '오다venir' 동사를 구별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이 왔다"의 연장선에 걸쳐 있는 "비가 왔다"라는 문장의 번역에는 선택이 요구된다. 어쨌거나 이 부분을 고민하며 한국어 원문에서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비가 왔다" 속 '왔다'의 감각이, 단순히 비가 '떨어진다'라는 통상적 의미로 손쉽게 전환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왔다"라는 어떠한 사건의 연장선, 즉 무언가의 '도래'로서의 의미로 전이되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그냥 추적추적 비가 왔다는 경험을 술회하는 것이 아니라, 강우降雨가 사건 혹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뭉텅이로 뭉뚱그려 다가오는 느낌 말이다. 그리고 "'내일'은 비가 '왔다'"라는 시제의 일그러짐에서도, 화자에게 있어서 비가 왔다는 사건이 몸으로 느낀 구체적 경험이라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시간감이 혼융된 패러독스(쉽게 말해 뇌내망상이나 자폐)로 다루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더불어 "비"와 "눈"이, 각각 직접적 경험과는 거리가 먼 "기억"과 "추억"과도 결부되어 있다는 점 역시 시간적 거리감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 오던 날, 눈 오던 날의 추억은 머릿속에서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거리", 즉 나와 멀리 있는 옛 기억이라는 거리감을 "지탱"한다.) "나"와는 유리되어 있는 사건으로서의 "왔다"는 따라서, 시간적 거리감을 나타내기 위한 프랑스어의 단순과거를 연상시키는 듯해, 그렇게 옮겼다. 덧붙여, "오늘은 마른 눈이 온다"라는 문장 속 '오늘'과 '온다' 역시, 진짜 화자가 직면한 현실의 '오늘'과 '현재-근미래'와는 동떨어진 현재처럼 기묘하고 생경하게 읽힐 수 있다. 가령 일본에 있는 내가, '오늘 프랑스 파리에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아니 어쩌면 스크린을 통해 비치는 영화 속 비 오는 서울의 풍경을 보고서는 '오늘 서울에 비가 온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묘한 감각 말이다. (공간과 시간이 모두 일그러져 있는 '현재'의 느낌…)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지막의 "그것이 왔다"는 첫번째 행의 "그것이 왔다"와는 형태가 같아도 의미가 다르게 느껴져야만 한다. 한국어 원문에서 같게 쓰였다고 손쉽게 같은 의미로 볼 것이 아니라, 첫 번째 행과 마지막 행 사이의 묘사를 경험한 독자는 그것이 (나와는 막연히 유리되어 있는 머릿속 사건 - "추억"이나 "기억" 같은 추상의 뭉텅이가) "왔다"에서 (눈앞의 향기라는 사건-구체의 경험으로) "(풍겨)왔다"로 전이되었음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마지막의 "그것이 왔다"를 의도적으로, 첫 번째 행과는 판이하게 (현재완료적 의미의) 복합과거로 옮겼다. 지금 상황과 결부된 시간감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정확한 독해라고 나름대로 생각은 하는데, 이게 정말 맞다면 해당 시는 어쩌면 프랑스어로 쓰였어야 할, 프랑스어에 더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니, 다른 작품 속에 앙리 미쇼 같은 프랑스 시인들 이름도 꽤 나왔던 것 같고, 이준규 본인도 불어 번역을 하기도 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미 한국어 문법을 벗어나 시를 쓰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옮기면서 나름대로 각운의 구색을 맞출 수 있을 법한 기미가 보인 터로 aabb식의 평운(平韻, rime plate)으로 옮기자 노력했다. 다소 억지로 각운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보라색으로 칠해둔 부분과 같이 원문에는 없거나 원문과는 다소 다른 단어가 기용되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더불어 해당 작품은 총 15행으로, aabb 식으로 짝을 맞추면 한 행이 남게 된다. 그렇게 각운을 이루지 못한 채 혼자 남은 행은 바로 밑에서 세 번째, « Échouant à l'édification de l'échec(실패의 구축에 실패하며) » 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어떤 문장과도 각운의 짝을 이루지 못한 외톨이 행인데, 문장의 의미마저도 '실패의 구축에 실패'라는 '철저한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형식과 의미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운 쩔뚝임.
어쩌다 보니 부끄럽게도 주저리주저리 자기변명과 자기해설을 교착시켜 버렸는데, 시를 단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이렇게 정리된다. '더는 만나지 못할, 그리고 잊지 못할, 기억 속에서 입을 다문 시절 혹은 그녀의 상象을 망각하고자 애쓰는 자에게, 애석하게도 다가와버린 추억의 향기, 혹은 그러한 사건.'
사실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할 이야기가 수두룩하기는 한데, 일단 프랑스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의미가 이러하다는 사실만을 빠르게 속기하도록 한다. 보잘것없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발견이다.
(더불어, 한국어는 못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 블로그를 가끔 들여다 봐주는 일본인 친우가 몇 있어서 일본어로도 옮겨 놓고자 했지만, 사실상 한국어에서 곧바로 직역이 되어버려 방금 이야기한 것과 같은 감각을 옮겨내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면 이 시는 일본어로 옮기면 프랑스어를 옮길 때와 같은 '맛'이 전혀 살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어 번역은 썼다가 도로 지워버렸다.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대강 번역기를 돌려 읽어보기를.)
향기
ー이준규
그것이 왔다
내일은 비가 왔다
비린 후회의 추억처럼
오늘은 마른 눈이 온다
벗은 살의 먼 기억처럼
거리를 지탱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잊을 수 없는 것을 잊고
정교한 헛짓으로 번지는 벽
입을 다문 슬픔의 모습
그림자의 순간을 견디는
그림 없는 그리움
실패의 구축에 실패하다
완전한 망각을 권유하는 향기
그것이 왔다
(이준규, 『흑백』, 문학과지성사, 2006)
Parfum
ーJunkyu Lee
Il vint
Demain, la pluie vint*
Comme le souvenir d'un remords puant*
Aujourd'hui, vient la neige sèche évidemment*
Comme la lointaine mémoire d'une chair nue
Qui ne s'efface nulle part, soutenant la rue
Boire une tasse de thé
Oublier l'inoubliable avec difficulté
Et le mur qui s'imprègne d'une vaine pantomime* sophistiquée
L'apparence de la tristesse avec la bouche fermée
Endurant l'instant de l'ombrage
Une nostalgie sans image*
Échouant à l'édification de l'échec
Un parfum invitant à l'oubli bien tenu
Il est venu
*vint : Normalement, on aurait dû utiliser « il plut », mais j'ai choisi de transformer le verbe pour maintenir la cohérence avec « venir » qui domine le premier vers et l'ensemble du poème.
*puant : Le terme original coréen « birin비린(비리다) » évoque une odeur désagréable et singulière, souvent associée au poisson ou au sang. Ce n'est pas une odeur aussi forte ou violent que « fétide », mais plutôt une émanation subtile et persistante.
*vient la neige sèche évidemment : Une traduction littérale de « 오늘은 마른 눈이 온다 » serait « il tombe la neige sèche ». Cependant, pour exprimer une prédiction résolue ou une affirmation de ce qui va advenir au futur proche, j'ai ajouté l'adverbe « évidemment ».
*pantomime : J'ai préféré ce terme à « acte » ou à « geste » afin de souligner l'aspect autistique et l'isolement du locuteur.
*image : L'usage de « image » était inévitable pour respecter la rime, bien que dans le texte original coréen, le sens se rapproche davantage de « peinture ». De plus, le texte original crée un rythme par la paranomase entre trois mots : « geurimja그림자ombre(ombrage) », « geurim그림peinture(image) », et « geurium그리움nostalg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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