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박지우(eternephemere)
미셸 레리스,
『게임의 규칙 1 - 말소』
Michel Leiris
LA RÈGLE DU JEU, Ⅰ, BIFFURES

「…행이다!」
방의 그 무정한 바닥 위에 (손님 맞는 방이었나? 밥 먹는 곳이었나? 칙칙한 당초무늬가 들어간 붙박이형 카펫이었나, 아니면 아무래도 좋을 문양으로 그 속에 여러 가지 궁전이며 풍경, 대륙 들을 그려 넣어 말 그대로 내 유년기의 만화경이었던, 그 안에 환상 속 건축물들을 여기 놓고 저기 놓아 보았기에 당시에 그 어떤 책을 넘겨 보아도 펼쳐지지 않았던 천일야화의 바탕천이 되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깔개형 카펫이었나? 아니면 왁스 칠한 맨 마룻바닥? 거기 바탕색보다 짙게 그어져 있는 나뭇결들은 뻣뻣이 검게 패인 홈을 따라 반듯하게 나뉘어 있었고, 어쩌다 운 좋게 일용 재봉사 손에서 바늘이라도 떨어진 날이면 그 홈에서 동그랗게 뭉쳐진 먼지를 꺼내며 놀고는 했었는데) 방의 틀림없는 ー 데다가 인정(人情) 없는 ー 그 바닥 위에 (방이 보들보들했나 아니면 목재였나, 장식이 과했나 아니면 단출했나, 또 상상의 나래에 적합했나 아니면 보다 기계적인 놀이에 적합했나), 그게 손님 맞는 방이었나 밥 먹는 곳이었나, (집 안에서도 특히, 가구에 보통 덮개가 씌워져 있고 수수한 재물이란 재물들이 자주 덧창에 가려지며 내리쬐는 직사광을 면해 있던 그 장소였는지 아닌지에 따라) 어슴푸레한 곳이었거나 빛 잘 드는 곳이었거나, 어른이 아니고서야 들어갈 수 없는 그 특권적 영토 ー 이자 피아노가 선잠을 자리만치 조용한 동굴 ー 였나, 아니면 더욱이 일상적인 곳으로 커다란 확장형 식탁이 놓여 있어 그 주위로 가족 전원이나 일부가 매일매일 모여 식사라는 의식을 치르던 그 방이었나 모르겠으나, 바로 그 병정이 떨어져 있었다.
병정 하나. 재질은 납 아니면 지점토. 모양으로 보나 색깔로 보나 섬세하게 잘 찍어낸 피규어인지, 아니면 만듦새도 별로인 데다 색깔도 파랑 빨강 하양 검정으로 괴발개발 칠해져 있어 부서지기라도 하면 희멀건지 흙빛인지는 몰라도 본체가 수상한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진 것만은 훤히 보이는 그저 그런 종류인지 모를 그런, 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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