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번역] 피에르 르루, 「상징주의 문체에 관하여」

eternephemere 2025. 7. 8. 06:58

L'Esthétique romantique en France.

par Claude Millet, 1994

 

피에르 르루 PIERRE LEROUX

상징주의 문체에 관하여.1 DU STYLE SYMBOLIQUE

 

1829년 빅토르 위고의 동방시집 출판을 계기로 쓰인 "상징주의 문체에 관하여"는 당시 일어나고 있던 시적 혁명에 관한 고찰이다. 머지않아 낭만적 사회주의의 거장 중 하나가 될 터인 피에르 르루는 "상징주의 문체에 관하여"를 낼 당시에는 생-시몽의 제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이자 세계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수사인 은유에, 매우 생-시몽적인 관점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르루에게 은유métaphore란 시이며, 다시 말해 낭만주의이다. 자세히 말해서, 만약 낭만주의 문체가 시의 본질을 구현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은유성métaphoricité의 특수한 경우인 상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의allégorie와 비유comparaison이 그러하듯, 상징은 구체와 추상을 결합하고, 이미지를 사상에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비유는 추상적인 사상 다음 이미지 순으로 따로따로 전개해 나간다. 우의는 사상을 지워버리는데, 사상은 이미지 속에서 투명한 동시에 완결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반면, 상징은 한 단어로 '사상'을 제시하고서 이미지를 전개해 나간다. 상징의 징표 중 하나는 바로 신속성이다. 상징주의 문체가 은유성의 무한한 특성을 띄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신속성을 통해서이다. 낭만주의 시는 이미지들의 증식이며, 시의 종결은 그것을 잠시 멈추게는 할지언정, 완전히 매듭짓지는 못한다.

상징 속에서는 추상과 구체가, 사상과 물질이, 철학적 성찰의 산물과 자연이 결합된다. 그렇기에 낭만주의의 계보는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에서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Bernardin de Saint-Pierre로, 그리고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에서 루소Rousseau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상징주의 문체란, 사변적인 것이 아닌 관조적인 철학, 다시 말해 모호함과 신비의 표상 아래에 놓인 철학과 자연에 대한 감성을 잇는 결합의 시적인 형상화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상징을 통해서 사유한다. 상징은 시적인 진리와 철학적 진리의 결합을 드러낸다. 이러한 결합은 언어의 시시적 기능 (야콥슨Jackobson)이 사라지고, 이를테면 시적 기능이 부상하는, 문체의 불투명성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지점에서 언어는 '신비의 색조를 띠고, 말하는 대신 들려가기를 승낙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주의 문체는 모방의 시가 아니라, 암시suggestion의 시, 독자의 상상력으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협동하도록 하는 호소appel로서의 시이다.

 

1. 상징주의 문체에 관하여, 1829년 4월 8일 Le Globe 출판.

 

[...]

 우리가 보기에, 만약 들레클뤼즈Delécluze 씨가 자신의 주제에 더 많이 파고들어 갔더라면, 『리어 왕』과 『한 여름 밤의 꿈』의 작자가 어떤 문체 기법을 통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작동하게 만들었는지 자문했을 것이다. 이어서 그는 현대 작가들 중 몇몇이 그런 동일한 기쁨을 안겨주며, 같은 몽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그러한 작가들 역시 북쪽 시인들처럼 포괄적인compréhensif 문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작가들 중 일부는 어찌하여 셰익스피어와 북방 시인들의 문체 기법에 다가갈 수 있었나? 그토록 철학적이고, 정확하며, 명료한 우리의 언어가 어찌하여 그런 식의 격렬함에 /이용되고se prêter à cette violence/, 신비의 색조를 띄며, 말하는 대신 들려가기에 승낙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러한 목표에 도달했다고, 또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밝히고자 하듯, 바로 본래 의미에서의 비유를 엠블렘, 상징, 우의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인정해야 하는 바는, 모든 시는 은유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시인이란 자기 영혼의 모든 권능을 동원하여 온갖 종류의 관계를 포착하고, 그것들을 이미지의 형태로서의 동일한 관계들로 대체하는 자라는 사실인데, 이는 반대로, 마치 기하학자가 숫자, 선, 면, 입체, 자연의 모든 사물들과 모든 현상들 대신에 그 어떤 구체적인 의미도 나타내지 않는 문자와 순전히 추상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본디 의미에서의 은유, 그리고 엠블렘, 상징, 우의를 은유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포괄시킨다면, 우리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란 곧 은유이며, 시와 은유는 동일한 것이라고, 또 국가 간의 차이 뿐 아니라 한 민족 내에서의 세대 차이에서 보더라도, 은유의 깊이는 곧 시의 정수를 파악하는 척도라고 말이다.

자, 그렇다면 추상적인 용어들을 이미지로, 적절한 표현을 모호하며 불확정적인 표현으로 계속해서 대체시키는 양태가 한 언어 안에 갑자기 도입된다고 가정해보고, 그 효과를 한번 확인해보라. 그 언어 공동체peuple의 시에서 추상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비가 탄생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언어 속에 상징적 비유, 간단히 말해 상징이라 부를 수 있을 문체의 형태가 도입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언어 형식의 기교는, 다른 것에 비교하고자 하는 사유 자체는 전개시키지 않으면서, 오직 이 두번째 사유만을, 달리 말해 이미지 만을 전개시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따라서 본래 의미에서의 비유와 우의 사이의 중간 형태이면서, 비유보다는 더 빠르고 우의보다는 덜 난해하다. 이것이 바로 참된 의미의 엠블렘(상징)이다. 적합한 단어를 은유로 대체하듯, 여기서 사유/사상은 그 엠블렘(상징)으로 대체된다. 말하자면 사유의 은유인 셈이다.

몇 가지 예를 통해 설명해보도록 하자. 『아탈리Athalie』의 합창 부분은 오랫동안 우리 언어에서 가장 성서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비유적이고 이미지로 가득 찬 문체의 전범으로 흔히 인용된다. 그 중 잘 알려진 비유 하나를 살펴보자.

 

Ô bienheureux mille fois

L'enfant que le Seigneur aime,

Qui de bonne heure entend sa voix,

Et que ce dieu daigne instruire lui-même ! 

Loin du monde élevé, de tous les dons des cieux

Il est orné dès sa naissance : 

Et du méchant l'abord contagieux

N'altère point son innocence.

 

Tel en un secret vallon,

Sur le bord d'une onde pure,

Croît, à l'abri de l'aquilon,

Un jeune lys, l'amour de la nature.

여기서 볼 수 있듯 라신은 비유의 첫 항terme을 이미지와 같은 정성을 들여 전개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러한 추상적 사유가 추상적인 표현들로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합창들 여기저기서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비유는 자주 발견되나, 상징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을 뿐으로, 그것은 갑작스레 예지력vision prophétique을 얻게된 요아드Joad가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장면이다.

 

Comment en un plomb vil l'or pur s'est-il changé ? ...

Quelle Jérusalem nouvelle

Sort du fond du désert brillante de clartés ! 

 

하지만 여기서 이러한 문체가 사용된 이유는 명확하다. 진정한 상징들, 현실적인 비전, 미래의 모호한 예언으로 구성된 이것은 마찬가지로 우화이다. 이례적인 문체로 쓰인 이 대목은, 완전히 다른 시로 둘러 싸여 있음으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진다. 요아드Joad의 예언이 우의적 문체를 지닌 어느 시인의 시구들 가운데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대조는 사라지고, 아무런 효과도 창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빅토르 위고의 시편들 속에서 상징적인 비유/대조*의 예시를 들어보자.

 

Il (Napoléon) a bâti si haut son aire impériale,

Qu'il nous semble habiter cette sphère idéale

Où jamais on n'entend un orage éclater ; 

Ce n'est plus qu'à sese pieds que gronde la tempête ; 

Il faudrait pour frapper sa tête

Que la foudre pût remonter.

La foudre remonta...

 

(Les deux îles.)

 

여기서 알 수 있듯, 위고의 방식은 라신과는 완전히 판이하다. 시인은 나폴레옹의 위대함이라는 사유를 전개하지 않고, 다만 곧바로 이미지로 건너뛴다. 심지어 비유조차도 없고, '독수리aigle'라는 말조차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미지들 속의 사유는 그 무엇보다도 명확하다. 이것이 바로 상징이다.

르네René에게서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 Souvent j'ai suivi des yeux les oiseaux de passage qui volaient au-dessus de ma tête... Un secret instinct me tourmentait : je sentais que je n'étais moi-même qu'un voyageur ; mais une voix du ciel semblait me dire : "Homme, la saison de ta migration n'est pas encore venue ; attends que le vent de la mort se lève, alors tu déploieras ton vol vers ces régions inconnues que ton cœur demande." - Levez-vous vite, orages désirés, qui devez emporter René dans les espaces d'une autre vie... »

 

이런 식의 인용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터인데, 왜인즉 비록 고전 문학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현 시대의 경우 반향을 일으킨 글들 몇몇을 대강 훑어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와 『아탈라』의 저자가 그렇게 대담하고도 장엄하게, 우리 언어에 거의 처음으로 상징적 형식을 도입했을 때, 그것들이 얼마나 낯설게 보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있을까? 당대의 평론가들은 그러한 대단한 형태들을 갈기갈기 찢었고, 겉보기에는 기이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그러한 조각조각들을 붙잡고서, 그들은 이를테면 "죽음의 바람"이나 르네를 다른 삶의 공간 속으로 데려가는 "폭풍들"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 따져 묻고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의 파편들조차도, 우리를 새로운 은유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주면서, 우리 언어를 비옥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반복해서 일러두는 바이지만, 만약 모든 시의 본질적인 요소가 길고 짧음을 떠나서 비유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특유의 신속성을 가지고서 비유들을 증식시키며 도처에 넘쳐흐르도록 하는 문체 형식의 도입이 어떠한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고의 『유령들Les Fantômes』이라는 작품의 서두를 다시 읽어보도록 하자.

 

Hélas ! que j'en ai vu mourir de jeunes filles ! 

C'est le destin. Il faut une proie au trépas.

Il faut que l'herbe tombe au tranchant des faucilles ;

Il faut que dans le bal les folâtres quadrilles

Foulent des roses sous leurs pas.

 

Il faut que l'eau s'épuise à courir les vallées ; 

Il faut que l'éclair brille, et brille peut d'instant ; 

Il faut qu'avril jaloux brûle de ses gelées

Le beau pommier, trop fier de ses fleurs étoilées,

Neige odorante du printemps.

 

Oui, c'est la vie. Après le jour, la nuit livide.

Après tout, le réveil, infernal ou divin.

Autour du grand banquet siège une foule avide ;

Mais bien des conviés laissent leur place vide

Et se lévent avant la fin.

 

여기서는 동일한 사유가 서로 다른 스무 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매 행마다 비유가 사용된다. 고전적 양식에서라면 이 모든 이미지들을 포진시키려면 가히 이백 행은 필요로 했을 것이며, 아니 애초부터 그런식으로 축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문체에 익숙했던 시인이라면 아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기에. 왜냐하면 고전적 형식은 이러한 풍부성에 반감을 가졌으며,17세기나 18세기 시인에게서 한 사유를 가지고 두 비유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는 결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수사법/비유/전의trope는 오늘날 보편적 문체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도덕적 사유를 결코 추상적인 표현으로 전개하지 않으며, 다만 그러한 사유를 나타내는 엠블럼을 취하고, 상징을 부여하며, 앞서 좁은 의미로서 정의한 바 있는 방식으로서의 우화를 통해 전개해나간다는 사실이다.

상징으로 말하고, 우의로 표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보기에는 지난 50년 간의 문체에 있어서 중대한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적 문체에서 본다면, 낭만주의란 결국 두 세기 가까이 잊혀졌던 하나의 수사법trope을 언어 속에 다시 불러온 사건이었다고.

[...]

만일 이전 것보다 훨씬 더 시적인 이러한 혁신에 기원을 부여해야만 한다면, 장자크 루소의 저작들을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문체로만 본다면 그 자신이 선구자가 되었던 작가 계열에는 전혀 속하지 않을 테지만, 사회를 향한 그의 외침이나 철학적 해법들에 대한 그의 냉소, 그리고 고독한 삶과 관조적인 쾌락 등에 대한 고백은, 세상에 대한 혐오와 더불어 자연의 풍경에 대한 진정한 열광을 많인 이들의 마음속에 불러 일으켰다. 루소가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에게 끼친 영향은 자명하다. 그리고 『인도 오두막La Chaumière indienne』의 저자인 생 피에르는 이미 이 새로운 문체의 혁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도덕 철학자에게 있어서 자연에 대한 고독하고 열정적인 궁구는 거의 필연적으로 하나의 사유들의 연쇄를 낳게 되었고, 이는 곧 상징적 문체로 이끈다. 왜냐하면 이 철학자가 어떠한 도덕적 사유를 표현하려고 할 때, 그의 영혼에는 동시에 감각적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이미지가 추상적인 사유에 형체를 부여하며, 사유의 구체적 표현이자 엠블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징으로 치장된 사유는 시인에게도 더욱이 마음에 들게 된다. 사유가 새롭다면, 더더욱 새롭게 느껴지고, 진부한 생각이라면, 보다 새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이래로, 상징주의에 대한 애호는 계속해서 깊어졌다. 샤토브리앙의 강렬한 상상력은, 수많은 정념으로 자극을 받고, 정치적 세계의 격동에 의해 자연으로 되돌려졌으며, 곳곳에서 정신주의의 증거를 찾으려 했고, 종교적 신앙을 되살리기 위해 하늘과 땅에 말을 걸었으며, 결국 풍부한 색채들을 발견해냈다. 이러한 문체 상의 커다란 변화, 그리고 나아가 언어 속에서의 커다란 변화는 어느 유치한 모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깊이 체감된 요구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들레크뤼즈 씨 생각처럼 외국의 몇몇 관용어법idiotisme을 채택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온 표현의 힘, 일종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시, 그리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유의 쇄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연과 그 신비로운 조화에 대한 탐구, 바로 이것들이 그러한 변화(문체)를 가능케했다. 이후로는 수많은 부차적인 요인들이 이러한 흐름에 가세했다. 한때 볼테르가 터무니없는 조소의 대상으로 삼았었던 성서의 시적 문체에 대한 애호가 생겨났고, 외국문학에 대한 애호 역시 생겨났으며, 동방Orient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졌으며, 새로운 감정 역시 필요로 하게 되었다. 또한 자유와 개인주의적 감수성이 도처에 퍼져나가게 되었고, 이는 전 영역에 적용되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흔히 세기의 정신l'esprit du siècle이라 부르는 것을 포함하는 모든 것의 총체적인 영향이며, 이는 수 많은 다른 문제들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치 예술의 표현 방식이 유럽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지는 일종의 동시성을 띠는 것처럼, 이 새로운 문체 역시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태동되고 전개되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깊은 명상에 빠진 작가들의 펜촉 아래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