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지망생을 위한 조언(作家志願者への助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작가지망생을 위한 조언'이 주어진 과제이기는 하나, 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못 답하기 까다로운 과제이다. 남에게 여유로이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다.
줄곧 타인에 대한 비평만 하고 있다 보면, 타인한테서 비평을 당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품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훌륭한 위치에라도 서지 않는 한, 진정한 조언 같은 것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뛰어난 경우를 제쳐두고서, 비평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남의 작업을 곁에서 단순히 분석하고 설명하고 평가하면 그만이기에, 비평가는 저마다의 재능에 알맞게 높은 자리에서 제멋대로 열을 토하는 식인데, 조언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비평정신이 박약한 이에게 조언이 불가하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비평이 가능하다고 해서 조언까지 잘할 수 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조언이라고 하는 것은 더 실질적이고, 절실하되, 세심한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나는 일거리로 메이지대학 문예과에서 문학개론 강좌를 담당하고 있어서, 무슨 말이든 지껄이기는 한다. 자연주의 문학은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심리파라는 일파는 이런 스타일이라는 둥. 학생 입장에서도 딱히 나에게 항변을 놓을 기미는 없다. 그런데 만약 학생들 가운데에 성실한 창작지망생이 있다고 했을 때, 그이가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 거기서 어떤 실질적인 조언을 골라 듣게 될 것인가를 묻는다면 문제는 급변해 버린다.
제법 오래전 일로, 무슨 잡지였는지 잊어버리긴 했으나, 문학지망생을 위한 충고문을 부탁받은 키쿠치 칸菊池寛 씨는 이렇게 썼다. 지금부터 소설이라도 써보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외국어 하나쯤은 터득해 두어라, 고. 당시에 나는 이를 읽고서 실로 간명하고 적확한 충고라며 감탄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말을 두고서 진정한 조언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당장 내일부터라도 실행이 가능하고, 실행한 이상 반드시 실익이 있다. 그러한 말을 두고서 진정한 조언이라 부르는 것이다. 비평은 쉽고, 조언은 어려운 까닭이다.
보들레르 또한 『낭만파예술L'Art romantique』이라는 책 속에서, 「청년작가를 위한 충고Conseils aux jeune littérateurs」라는 글을 썼다. 필시 멋들어진 말이 쓰여 있겠지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우선 스스로의 운과 불운에 대한 한탄을 그만두고, 의지를 강고히 하라느니 운운하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죄다 평범한 조언이다.
생각해 보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어떤 조언이 훌륭한가 하찮은가는 전적으로 그 실천적 의의에 달려 있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조언을 실행하지 않은 한, 조언의 진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역설성은 온갖 유명한 조언에도 공통되는 성질이다. 실행에서 유리된 조언은 없다. 거기서 실행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본디 멋들어진 실행도 비뚤어진 실행도 없으니, 실행이라고 하는 것은 죄다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이야말로 실행이 갖는 최대한의 성질이다. 따라서 그 모든 유명한 조언들도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다.
좋은 약은 입에도 쓰다[良薬口苦]라, 옛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말을 남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약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입에 쓴 것도 알지 못한다. 가령, 적어도 외국어 하나쯤은 터득해 두어라,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자. 이를 실행할지 말지의 여부는 자기 의사(意思)에 달린 문제이지만, 그러한 고상한 문제에 부딪히기 이전에, 머리에서는 이미 이것을 평범한 말로 간과해 버린다. 이러한 조언은 결코 어떠한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 몸에 비추어 보며 내일부터 외국어를 공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터득하게 된 그때에 나는 실제로 어떤 이익을 얻게 될까, 신중히 머리를 굴리면서 읽어보지 않는 한, 조언이 품은 의미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어떤 조언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조언을 실행할지 안 할지는 듣는 사람 마음이다. 그에 앞서 중요한 점은, 조언이란 결코 설명도 분석도 아니라, 언제나 실행을 권유하는 것임을 각오하고서 듣는 것이다. 세심하게 이야기를 할 때, 그에 맞춰 세심히 들어주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이야말로 온갖 유명한 조언들이 늘 맞닥뜨리는 비극이다.
어째서 이렇게 구시렁구시렁대고 있는가, ー 그건 여러분 스스로 반성해 보시라. 여러분은 스스로 실행해 보지 않은 조언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반성해 보시라. 듣고 읽기만 할 뿐 실행을 하지 않으니, 여러분은 이미 평범한 조언에는 신물이 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새롭게 기발한 말을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여기서 물러나기도 어려운 노릇이므로, 나 역시 나 나름대로 조언을 두어 가지 술회해보겠다. 이는 읽기에 관한 조언이요, 쓰기에 관한 조언은 나에게 벅차며, 조언이 되기에 앞서 자계(自戒)가 될지도 모를, 말할 것도 없이 평범한 조언이다. 하나 평범하기에 훌륭하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미리 밝혀두자면, 이것들 가운데 내가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다. 혹은 지금도 실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굉장히 유익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1. 항상 일류작품만을 읽어라
전당포 주인은 커서 점원이 될 아이를 위한 심미안 교육으로서 우선 매일같이 일류품만을 눈에 담아 두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좋은 것만 보다 보면 나쁜 것은 저절로 알아보게 되지만, 그 반대는 어렵다. 이는 우리 눈의 타고난 성질 때문이다. 이 타고난 성질을 문학 감상에도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길러지는 직관적인 척도야말로 나중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2. 일류작품은 예외 없이 난해함을 깨달아라
일류작품은 문학지망생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다가가기 어려운 천재의 경지는 둘째 치고라도, 적어도 성숙한 인간의 난숙(爛熟)한 감정의, 사상의 표현이다. 서둘려 엿보려 해도 펼쳐지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에게는 같은 사실 같은 이치를 이해하는 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결코 전망이 트이지 않는 무수한 단계를 품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명작을 접하고서 어떤 단계에 서서, 이 사실을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깨달은 척하고 싶어 한다. 재독하고서 무엇이 발견되는지를 좀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 거기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류작품은 난해하지만, 난해하다는 그 사실만큼은 그렇게 깨닫기 어려운 사실이 아님을.
3. 일류작품의 영향을 두려워마라
세간에서 영향을 받았다느니 받지 않았다느니 하는 그런 손쉬운 사정에는 영향의 진의가 없다. 그런 것은 단지 다소 복잡한 모방의 문제에 불과하다. 진정한 영향이란 따질 것도 없이 '꽝'하고 얻어맞는 것이다. 손도 발도 못 쓸 정도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일이다. 이러한 기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붙잡지 않으면, 명작으로부터 피가 되고 살이 될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저 약삭빠른 비평만 해대며 명작의 앞을 스쳐 지나갈 뿐.
4. 만일 어느 유명작가를 택하게 되었거든 그의 전집을 읽어라
어느 유명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는다. 그의 서간, 그의 일기 구석구석까지 뒤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그가 단 하나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쓰지도 않고서 버리고 갔는지를 이해한다. 정말 뭐든지 해본 사람, 뭐든지 알고 있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그에게 붙인 레테르나 평범한 문학사가가 해석하는 그의 성격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풍부한 인간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5. 소설을 소설이라 생각하며 읽지 마라
문학지망생의 최대 약점은 자기도 모르게 문학이라는 것에 속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에 뜻을 둔 덕분에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당사자는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문학의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은 전혀 반대다. 문학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문학이라는 것이 성립된다. 문학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소설이라는 것이 단지 인간이 몸소 이루어낸 단순한 표현일 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솔직한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읽을 수 없다. 대신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말하고, 무슨 파(派)인지, 무슨 주의인지를 따지고 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설이라는 것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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